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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묻는다"는 뜻으로 , 문화에 대한 진시황의 가혹한 정치를 가리키는 말
<출전>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진(秦) 나라의 시황제가 6국을 평정하고 천하통일을 이룬 지 8년이 되는 해였다.
시황제가 함양궁에서 베푼 주연에 참석한 박사 순우월(淳于越)은 군현제(郡縣制)를 폐지하고 봉건제를 부활시키자고 건의했다.
" 군현제로는 황실의 무궁한 안녕을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시황제가 다른 신하들의 의견을 묻자, 승상 이사(李斯)가 이렇게 말했다.
" 봉건시대에는 제후들끼리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천하가 어지러웠지만, 이제는 통일이 되어 모든 법령이 한 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옛 책을 배운 자들 중에는 그것만 옳게 여겨 새로운 정책이나 명령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정치에 대한 모든 논의를 금지하고,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 복서(卜筮), 농업에 관한 책과 역사서를 제외한 모든 글, 즉 시서(詩書)에서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다 불태워 없애 버리는 것이 옳을 듯싶습니다."
이 말을 들어 시황제는 관청에 비치된 희귀본은 물론이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학 서적까지 거두어 모조리 불태우게 했다. 이것이 바로 '분서(焚書)'이다.
그 이듬해 아방궁이 완성된 후, 시황제는 불로장생을 꿈꾸며 신선술(神仙術)에 능통한 방사(方士)들을 후대했다. 그중에서 시황제는 특히 노생(盧生)과 후생(侯生)을 총애했는데, 그들은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는 시황제의 부덕(不德)을 비난하고 재물을 챙겨 달아나 버렸다. 시황제는 크게 분노했다.
" 내가 그토록 총애하던 놈들이 그럴 때는 다른 놈들이야 더 말할 게 없겠지."
시황제는 곧 함양 거리에 염탐꾼을 보내 방사와 유생들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그 결과, 460명이나 되는 방사와 유생들이 돌아다니면서 시황제의 실정을 비난한 사실이 밝혀졌다. 분노가 극에 달한 시황제는 구덩이를 파고 그들을 모두 산 채로 파묻게 했다. 이 일을 '갱유(坑儒)'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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