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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흥서2

[역사] 가도사벽 [ 家徒四壁 ]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에는 네 벽밖에 없다는 말이다. 가도벽립 ( 家徒壁立 ) 진중흥서 ( 晉中興書 ) " 탁문군(卓文君)이 밤에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오자 사마상여는 탁문군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로 돌아왔는데,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네 벽만 세워져 있었다. ( 家徒四壁立 )" 전한(前漢)의 문인으로 시를 잘 지은 사마상여는 관직에서 물러나 임공(臨仰)에 있는 왕길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임공의 대부호 탁왕손(卓王孫)이 베푸는 연회에 초대를 받았다. 연회에서 사마상여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탁왕손의 딸 탁문군이 사마상여를 사모하게 되었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서로 사랑하였으나, 사마상여의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탁왕손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탁만군은 사마상여를 따.. 2021. 11. 15.
[고사성어] 가계야치 ( 家鷄野雉 ) "집 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히 여긴다"는 뜻으로, 자기 집의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집 것만 좋게 여기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중흥서 (晉中興書) 남조시대 송(宋)나라 때 하법성(何法盛)이 지은 동진(東晉) 때의 사적을 기록한 기천체 에 있는 이야기다. 진나라에 유익(庾翼)이라는 사람은 한때 왕희지(王羲之)와 함께 거론될 정도로 뛰어난 서예가였다. 그러나 정치와 군사활동에 바빠 글씨 쓰는 데 소홀하다 보니 필력이 퇴보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왕희지는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산천을 주유하며 비문에 새겨진 역대의 서법과 서체를 연구하는 등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왕희지의 글씨는 온 세상에 명성이 자자했고, 양가의 자제는 물론 도성의 모든 젊은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왕희지의..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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