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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풍성학려 [風聲鶴戾]

by 청호반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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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겁을 먹으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라게 된다는 말이다.

<출전> 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

동진(東晉) 효무제(孝武帝)의 태원 8년(383), 진제(秦帝) 부견(符堅)은 스스로 병 60만, 기마 27만의 대군을 이끌고 장안을 출발하여 밀물처럼 진(秦)으로 육박했다. 진(秦)은 현상(賢相) 왕맹(王猛)을 등용하여 부견 일대(一代) 사이에 진(晉)의 몇 배나 되는 판도를 자랑하는 제일의 강국으로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 왕맹은 죽음에 앞서, '진(晉) 나라만은 건드리지 마시도록.....'하고 유언을 했다.

 부견이 진(晉)을 공격한 것은 그 후 8년이 지나서였다. 진(晉)은 재상 사안(謝安)의 동생 사석(謝石)을 정토대도독으로 삼고 조카인 사현(謝玄)을 선봉도독으로 삼아 8만의 군세로서 진(秦)의 대군을 맞이했다. 먼저 현(玄)의 참모 유뇌지(劉牢之)는 정병 5천을 이끌고 낙간에서 진의 선봉을 격파 헸으며 그 장수를 목 베었다. 사현 등도 용약 전진했다.

 

 부견이 수양성에 올라 진군(晉軍)을 내려다보니 그 진요이 정연햇다. 문득 팔공산 쪽으로 눈을 돌리니 산은 진(晉)의 병사들로 뒤덮여 있었다. 놀라서 다시 자세히 보니, 그것은 풀과 나무였다. 그것을 깨닫자, 그는 불안을 느꼈다. 가슴속에서 겁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진군(秦軍)은 비수(肥水)에 진을 치고 있어서 진군(晉軍)은 건널 수가 없었다. 사현은 군사를 보내 진(秦)의 진지를 조금 후방으로 퇴각시켜 진군을 건너게 한 다음 거기서 승부를 결정하자고 청했다. "귀하의 군대를 조그만 뒤로 후퇴시켜 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물을 건너가 한 번 싸움으로 승부를 냅시다."

 

 상대를 무시하고 있던 부견과 부용은 얼마 안되는 적이 물을  반쯤 건너왔을 때 기습 작전으로 간단히 이를 해칠 생각이었다. 부견의 군이 후퇴를 개시하고 사현의 군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을 때 부견의 군대에서 뜻하지 않은 혼란이 일어났다. 물러나라는 명령을 받은 부견의 군은 사현의 군이 강을 건너오는 것을 보자 싸움에 패해 물러나는 것으로 오인하고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뒤쪽에 있던 군사들은 앞의 군사가 허둥지둥 도망쳐 오는 것을 보자 덩달아 겁을 먹고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부견의 군사들은 자기 군사가 모두 적군으로 보이는 혼란 속에 서로 짓밟으며 달아나다 물에 빠져 죽는자가 부지기수였다.

 남은 군사들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밤을 새워 달아나는데,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風聲鶴戾)'만 들어도 진(晉) 나라 군사가 뒤쫓아 오는 줄로 알고 가시밭길을 걸으며 들판에서 밤을 보냈다. 게다가 굶주림과 추위까지 겹쳐 죽은 사람이 열에 일곱 여덟은 되었다는 것이다.

 

 전진(前秦) 부견의 백만 대군이 383년 동진(東晉)을 공격햇다가 비수에서 동진의 사현(謝玄)에게 패배한 이 비수대전(肥水大戰)은 중국 3대 격전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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