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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파죽지세 [破竹之勢]

by 청호반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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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를 칼로 쪼개듯 무서운 힘을 가지고 거침없이 쳐들어가는 기세"를 말한다.

<유사어> 요원지화 ( 燎原之火)

<출전> 진서(晉書)  두예전 (杜預傳)

진(晉)의 무제(武帝) 감녕(感寧) 5년(279), 진의 대군은 남하하여 오(吳)에 육박했다. 진남대장군 두예(杜預)는 중앙군을 이끌고 호북의 양양에서 강능으로 쳐들어왔고, 서쪽 사천에서는 왕준(王濬)의 수군이 양자강을 쳐내려 왔으며,  왕혼(王渾)의 군사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이 무렵 삼국 중 촉한은 이미 망하고 천하는 위(魏)의 뒤를 이은 진과 남방의 오와의 대립 상태에 있었다. 진은  그 최후의 결전을 오에게 건 것이었다. 이듬해인 태강(太康) 원년 2월 두예는 왕준의 군과 합류하여 무창(武昌)을 빼앗고 여기서 제장을 모아 작전을 짰다. 이때 한 장수가 건의했다.

 ' 지금 당장 완전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봄철이라 비가 잦고 전염병까지 발생하기 쉬우니, 일단 작전을 중지하고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그러나 두예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우리 병사들의 사기는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 (破竹之勢))'요 대나무는 처음 두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 부터는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이니, 이 기세로 밀고 나가면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오."

 이리하여 두예는 곧장 오나라 수도를 향해 진군할 것을 명령했다. 진나라 군대가 이르는 곳마다 오나라 군대는 싸우지 않고 항복을 했다. 그리하여 단숨에 도읍 건업(建業)을 함락시키고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루었다.

 

한편 두예는 학문을 좋아하는 학자이기도 해서, 그가 좋아하는 <춘추좌씨전>은  거의 잠시도 손에서 떠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좌전> 주석서인 <춘추좌씨전 전해>와 <춘추석례(春秋釋例)>는  그가 남긴 것이다. 그 당시 말을 좋아하는 왕제(王濟)란 대신과  큰 부자이면서 인색하기로 유명한 화교(和嶠)란 사람이 있었는데, 두예는 그들을 평하여,

 ' 왕제는 마벽(馬癖)이 있고  화교는 전벽(錢癖)이 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무제가,  ' 경은 무슨 벽이 있는가 ?' 하고 묻자, ' 신은 좌전벽(左傳癖)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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