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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한단지몽 [邯鄲之夢]

by 청호반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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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사어> 남가일몽 (南柯一夢)

<출전> 침중기 (沈中紀)   

한단은 하북성에 있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서울이었던 곳이다. 이 말은 당나라 심기제(沈旣濟)가 쓴 <침중기>라는 전기소설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당 현종 개원(開元) 연간에 있었던 일이다.  도사인 여옹(呂翁)이'한단'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고 있었다.  거기에 노생(盧生)이란 젊은이가 남루한 차림으로 검은 망아지를 타고 가다가 역시 쉬게 되었다.

 젊은이는 여 옹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문득 생각난 둣이, '사나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부귀를 누리지 못하고 이런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다니......' 하고 한숨을 지었다.

'보아하니, 나이도 젊고 얼굴도 잘생긴 데다가 매우 패기가 있어 보이는데, 왜 그런 실망에 찬 소리를 하는 거지 ?'하고 여 옹이 묻자 노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지못해 살고 있을 뿐 즐거움이란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살면 즐겁게 사는 건가 ?' 하고 묻자, 노생은 출장입상(出將入相)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가장 소원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노생은 갑자기 졸음이 왔다. 그때 마침 움막집 주인은 메조를 씻어 솥에다 밥을 짓고 있었다.

 

여옹이 행랑에서 베개를 꺼내 노생에게 주며 말했다. ' 이걸 베고 눕지, 모든 것이 소원대로 이루어질 테니까' 청자로 된 베개였는데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노생이 베개를 베고 눕는 순간 잠이 어설푸레 들며 베개 구멍이 열리더니 속이 훤히 밝아왔다. 노생은 일어나 그리로 들어가 어느 부잣집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당대 제일가는 부잣집인 최씨(崔氏)집 딸과 결혼하게 된다.

 노생은 날로 살림이 불어나며 다시 과거에 급제까지 하게 된다. 고을의 원이 되어 크게 업적을 올린 끝에 3년 후에는 수도 장관으로 승진되어 장안으로 부임해 오게 된다.

 

 다시 그는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해 절도사(節度使)로 부임하여 큰 공을 세우고 약간의 파란이 잇기는 했으나 꾸준히 승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재상에까지 오르게 된다. 한때 간신의 모함을 받아, 포리들이 집을 둘러싸고 그를 역모 혐의로 잡아가려 했다. 그는 아내를 보고, '내가 고향에서 농사나 짓고 이었으면 배고픔과 추위를 겪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었을 것을 무엇이 부족해서 애써 벼슬을 하려 했던가 ......' 하며 칼을 뽑아 들고 자살하려 했다.

 

 그러나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는데, 다행히 사형을 면하고 멀리 남방으로 좌천이 되었다. 그러나 몇 해 후 모함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다시 재상으로 들어않게 된다.

 다섯 아들에 손자가 열이었고, 며느리들도 다 명문가 딸이었다. 이렇게 50년의 부귀를 누린 끝에 현직 재상의 몸으로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노생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는 순간 잠이 깨었다. 살펴보니 주막집에 누운 그대로였고, 옆에는  여옹이 앉아 있었다. 주인은 아직도 밥이 다 되지 않았는지 불을 때고 있었다. 노생은  깜짝 놀라 일어나며 '아니 꿈이었던가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여옹이 옆에서, ' 이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걸세' 하고 웃었다.

 노생은 과연 그 여옹의 말이 그렇다 싶었다. 노생은 잠시 후, ' 총욕(寵辱)과 득실과 생사가 어떤 것인지를 다 알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의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앉겠습니다' 하고 두 번 절한 다음 떠나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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