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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가도사벽 [ 家徒四壁 ]

by 청호반 2021.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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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에는 네 벽밖에 없다는 말이다.

<유사어> 가도벽립 ( 家徒壁立 )

<출전> 진중흥서 ( 晉中興書 )

" 탁문군(卓文君)이 밤에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오자 사마상여는 탁문군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로 돌아왔는데,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네 벽만 세워져 있었다. ( 家徒四壁立 )"

 전한(前漢)의 문인으로 시를 잘 지은 사마상여는 관직에서 물러나 임공(臨仰)에 있는 왕길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임공의 대부호 탁왕손(卓王孫)이 베푸는 연회에 초대를 받았다. 연회에서 사마상여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탁왕손의 딸 탁문군이 사마상여를 사모하게 되었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서로 사랑하였으나, 사마상여의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탁왕손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탁만군은 사마상여를 따라 성도에 있는 그의 집으로 한밤중에 몰래 달아났다. 사마상여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 살림살이가 없고 방안에는 네 벽뿐이었으므로 탁문군은 사마상여와 결혼하여 선술집을 차려 생활하였다.

그 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사마상여의 "자허부(子虛賦)"를 읽고 감동하여 그에게 벼슬을 내렸는데, 사마상여가 이름을 떨치자 그때부터 탁왕손의 집안에서도 사마상여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자허부(子虛賦)"는 한대(漢代) 산문부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내용은 자허(子虛)가 초(楚)나라 사신으로 가는 것을 가정하여, 초나라 운몽(雲夢)의 거대함과 군신(君臣)의 성대한 수렵의 모습, 초나라 풍물의 아름다움 등을 제나라 왕 앞에서 자랑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오유선생(烏有先生)은 제나라의 바닷가 맹저(孟藷)는 "운몽을 8,9개 삼킨다 해도 마치 가시 하나를 삼킨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며 제나라 토지의 광활함과 산물의 풍부함을 이야기하여 자허를 반박하였다. 대부분의 내용이 제왕의 넓은 정원과 수렵의 성대함을 묘사하는데 주력하여 풍자가 다소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당시 통치자가 좋아하는 향락적인 풍토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크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기세가 웅장하다. 또한 옛 격식에 구애되지 않는 창조정신이 나타나 있다. 한 무제는  "자허부"를 읽고 매우 기뻐하여, " 나는 어찌 그 사람과 같은 시대에 살지 못하는가 ? ( 朕獨不得與此人同時哉 )" 라며 한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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