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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가중연성 [價重連城]

by 청호반 2021.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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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어치가 여러 성을 합할 만큼 중하다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

초나라 화씨(和氏)가 산속에서 돌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옥돌 원석을 주워 와서 초나라 여왕에게 바쳤다. 여왕이 옥공에게 감정을 시킨바, 옥이 아닌 돌이라고 했다. 왕은 임금을 속인 죄를 물어 왼쪽 다리를 자르게 했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다시 그 원석을 바쳤다. 역시 옥공에게 감정시킨 결과 옥이 아닌 돌이라는 판정을 내려졌다. 이번에는 그의 오른발을 자르게 했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즉위했다. 그러자 화씨는 그 원석을 품에 안고 밤낮 사흘을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이 마르자 피가 잇달아 흘렀다.

 문왕은  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었다. 

 

" 세상에 발을 잘린 죄인이 많은데, 그대만 유독 슬프게 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

그러자 화씨는, " 다리가 잘린 것이 슬피 우는 것이 아닙니다. 보배 구슬이 돌로 불리고, 곧은 선비가 속이는 사람이 된 것이 슬퍼 우는 까닭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문왕은 옥공에게 그 원석을 다듬고 갈게 하여, 천하에 다시없는 보물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구슬을 "화씨벽" 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전국 시대에 이르러 그 옥벽이 우여곡절 끝에 조나라 혜문 왕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진왕(秦王)이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억지로 빼앗지는 못하고 처음에는 15개 성의 영토와 바꾸자고 조나라에 제의하였다. 조왕은 이것을 내주기는 아까웠지만 진나라의 원한을 살까 두려워 안 줄 수도 없는 일이어서 매우 난처해하였다.

 

 나중에 인상여라는 장수를 파견하며 진나라와 교섭을 하였는데 인상여의 재치 덕분에 다행히 옥벽을 빼앗기지 않고 무사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옥벽은 다시 조벽(趙壁) 또는 연성지벽(連城之壁) 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귀중한 보물 또는 가치가 높은 물건을 가리켜 "연성지보(連城之寶)" 또는 "가중연성" 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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