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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강동보병 [ 江東步兵 ]

by 청호반 202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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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東晉) 때의 유명한 문인인 장한(張翰)을 일컫는 말. 보병(步兵)은 벼슬이름이다.

<출전> 진서(晉書)  장한전(張翰傳)

장한(張翰)은 오(吳) 나라 사람으로, 자는 계응(季鷹). 제왕 경(齊王烱)의 동조연(東趙椽) 벼슬을 살았다. 별칭이 강동 보병(江東步兵, 보병은 진(晉)의 완적의 별호) 이다.

 이 성어가 생긴 유래는 위진(魏晉) 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산기상시(散騎常侍)였던 완적은 사마소에게 간청하여 외지의 벼슬, 즉 산동성(山東省) 동평(東平)의 태수로 나갔다.  그렇지만 얼마 되지 않아 사마소가 또한 종사중랑(從事中郞)으로 불렀고, 완적은 또한 보병교위(步兵校尉)로 나갈 것을 청했다.  보병교위를 청한 이유가 <진서> 완적전에 " 완적은 보병(步兵)의 주방장이 술을 잘 빚고, 주방에는 술이 3백 곡(斛)이 있기에 보병교위를 원했다."라고 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때문에 완적을  "완보병(阮步兵)" 이라고 불렀다. 완적 역시 세상의 속된 선비들을 백안시(白眼視)하면서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동진(東晉)은 강동에 도읍을 정한 나라였다. 때문에 장한을 완적과 비교해서 말할 때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당나라 때 출현한 두 사람의 성을 가진 시인에 대해 두보(杜甫)를 "노두(老杜)"라 부르고 두목(杜牧)을 "소두(少杜)라고 부른 것과 비슷한 관습이다.

 

<진서> 장한전에 있는 이야기다.

 제왕(齊王) 경(烱)은 장한을 불러 대사마 동조연(大司馬東曺椽)을 삼았는데, 장한이 하루는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문득 오중(吳中)의 순채(蓴菜)와 노어(鷺魚)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 인생이란 제 마음에 맞는 대로  살아야지 무엇 때문에 고향을 떠나 천리 밖에 나와서 명작(名爵)에 얽매이겠느냐 ?" 하고서 바로 고향에 돌아갔다는 고사이다.

 

 장한(張翰)이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강동보병(江東步兵)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 당신은 명성을 떨치기에 충분한 인물인데, 어찌하여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이오 ?"

 

  이에 대해 장한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 장래에 있을 명성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술보다 못한 것이오 (使我有身後名不如卽時 一杯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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