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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거족경중 [擧足輕重]

by 청호반 2021.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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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한쪽을 들어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무게 중심이 옮겨져 세력의 우열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아슬아슬하게 세력이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을 말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두융전(窦融傳)

한신(韓信)이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항우(項羽)와 싸우고 있을 때 일이다. 제(齊) 나라의 변사 괴통(蒯通)이 그를 찾아와 유방을 배반하고 독립하여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라고 권했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과의 신의를 지켜 거절했다. 당시는 초(楚) 나라와 한(漢) 나라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서 한신의 거취는 유방과 항우 모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었다.

괴통은 한신에게 말했다.

" 처음 난이 일어났을 때 천하의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이 연이어 크게 한 소리로 외치자 천하의 뜻 있는 인재들이 구름처럼 합치고 안개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이때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진(秦) 나라를 망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천하가 초나라와 한나라 둘로 나뉘어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습니다.  현재 한 왕 유방과 항우의 두 사람의 목숨은 장군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장군께서 한나라를 위하면 한나라가 이기고 초나라에 가담하면 초나라가 이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신의 경우처럼 세력 균형을 흔드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거족경중(擧足輕重)이다. 이 말이 나타난 것은 한신의 일이 있고 난 약 230년 뒤인 후한(後漢) 초기이다.

 

후한서 두융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천하를 새롭게 평정할 때 마지막까지 남은 군벌은 하서(河西) 지방의 외효(隗囂) 그리고 촉(蜀)의 공손술(公孫述)이었다. 유수는 하서 지방은 땅이 기름질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농서와 촉에 연결되어 있어 먼저 두융을 회유하여 나머지 두 군벌을 치려고 하였다. 그래서 두융에게 조서(詔書)를 보내 말했다.

 

 " 지금 공손술과 외효가 다투고 있지만 그 세력의 저울대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대요. 이때 그대가 다리를 좌우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擧足左右), 저울의 무게도 달라질 것이오(便有輕重)."

광무제가 조서에서 인용한 것이 바로 거족경중이다.

 

 이렇게 해서 두융을 끌어들인 유수는 마침내 두 군벌을 정벌하고 천하를 제패하였다. 이때 세운 공으로 두융은 대사공(大司空)이 되었다. 이처럼 한 사람의 행동 하나가 어떤 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일러 "거족경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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