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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 학 "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인물이 섞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사어> 계군고학 ( 鷄群孤鶴 ), 군계일학 (群鷄一鶴 ) , 학립계군( 鶴立鷄群 )
< 출전 > 진서(晉書) 혜소전
위진(魏晉) 시대에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불리는 선비들이 있었다. 곧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 산도. 왕융. 유영. 상수 등 일곱 명인데, 그들은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북동쪽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문학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세월을 보냈다.
혜소(?-304 )의 자(字)는 연조(延祖)라 하고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유명한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 혜강의 아들이다. 소(紹)는 열 살 때, 아버지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 당했다. 그 후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하고 있었으나, 망부(亡父)의 친우이며 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 혜강은 소에게 산도 아저씨가 계시니까 너는 고아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나서 죽었다.)가 당시 이부(吏部)에 있을 때 무제에게,
"<서경> 강고편에 부자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기는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시대의 진(晉) 나라 대부 극결에게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비서랑을 시키십시오" 하고 상주를 했다.
그러자 황제는,
"경이 추천하는 사람 같으면 승(丞)이라도 족하겠지, 반드시 낭(郎)이 아니라도 좋지 않겠는가"하고 비서랑보다 한 등급 위인 비서승(秘書丞)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소(紹)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무렵, 어떤 사람이 칠현(七賢)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에게,
"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혜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하며 독립 불기(獨立不羈)한 들학이 닭 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네 (亮亮然 野鶴如在鷄群) 하고 말하자 왕융은,
" 자넨 아직 그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겠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네." 하고 답했다. 여기서 "계군의 일학"이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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