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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역사] 고침이와 [高枕而臥] - 고사성어

by 청호반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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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개를 높게 하고 편안히 지낸다"는 뜻으로, 근심 없이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평온한 상태라는 말이다.

<유사어>   고침안면 (高枕安眠)

< 출  전>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소진(蘇秦)은 동주(東周)의 낙양 사람이다. 동쪽의 제(齊) 나라로 가서 스승을 찾아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 학습했다. 장의(張儀)는 위(魏) 나라 사람이다. 일찍이 소진(蘇秦)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세술(遊說術)을 배웠는데 소진은 스스로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소진은 장의와 더불어 전국시대 중엽 중국 전토를 세 치 혀(舌)와 두 다리를 가지고 뒤흔든 큰 책사이며, 권모술수(權謨術數)의 대가이다. 세치 혀의 능변(能辯)과 두 다리로 주름잡고 돌아다닌 나라가 소위 당시의 7국(연. 제. 조. 한. 위. 초. 진)에 걸친 것을 뜻한다.

 

 소진과 장의는 종횡가(縱橫家)로서 유명한데, 소진은 합종책(合縱策), 장의는 연횡책(連橫策)을 주장했다.

 합종책이란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 여섯 나라가 동맹하여 진(秦)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진의 합종책을 뒤집어 진나라로 하여금 유리한 위치에 서게 한 사람이 바로 장의였다. 장의의 연횡 책이란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장의는 본래 진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임을 받았다. 장의는 진나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이웃나라를 압박했다. 진나라 헤문왕 10년(BC 328)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그 후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 애왕(哀王)에게 합종을 탈퇴하고 연횡에 가담할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는 본보기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8만에 이르는 군사를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애왕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 기회를 포착한 장의는 애왕에게 말했다.

 "위나라는 영토도 좁고, 병사도 적습니다. 그런데 사방으로 초나라와 한나라 같은 강력한 제후들이 핍박하고 있습니다. 위나라는 열국의 통로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남은 초, 서는 한, 북은 조, 동은 제와 국경을 이웃해서 그 어떤 나라와 동맹을 맺어도 다른 나라의 원한을 삽니다. 또, 진이 위와 조의 길을 끊고 한나라를 설득해서 위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나라를 섬기는 것이 최상입니다. 만일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나 한나라가 감히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부터의 재앙만 없다면 대왕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몸을 뉘어 편안히 잘 수가 있을 것이고 나라에도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然以事秦 則楚韓不敢動  無楚韓之  則大王高枕而臥安眠  國必無憂矣"

 

 여기에다 진의 목적이 초에 있으므로 진과 위가 함께 초를 공격하여 초를 나누어 갖자는 미끼까지 던져 꾀었다. 결국 위나라 애왕은 초를 나누어 갖자는 미끼까지 던져 꾀었다. 결국 위나라 애왕은 합종에서 빠져나와 진나라와 우호동맹조약을 맺었다. 장의는 이 일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차례로 설득하여 마침내 주(周) 나라 난왕 4년(bc 311)에 연횡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이는 6국을 진에 헌상하려는 장의의 계책에 불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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