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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 관포지교 - 管鮑之交]

by 청호반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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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롱 관 / 절인어물 포 / 갈 지 / 사귈 교 )

" 관중과 포숙이의 사귐"이란 뜻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말한다.

<유사어> 문경지교(刎頸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 출 전 >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

춘추시대 제(齊) 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가 살았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나이가 들어서도 그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언젠가 둘이서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포숙아는 자본을 대고, 관중은 경영을 담당했다. 포숙아는 모든 것을 관중에게 일임하고 일체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기말 결산에 이익 배당을 할 때면 관중은 언제나 훨씬 많은 액수를 자기 몫으로 차지하곤 했다. 포숙아는 많다 적다 한 마디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 당시의 관례로는 자본주가 더 많이 차지하거나, 아니면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관중은 월급은 월급대로 받고, 용돈은 용돈대로 써 가며 이익 배당은 자기 앞으로 더 큰 몫을 돌려놓는 것이었다. 밑에 일보는 사람들이 속으로 불평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은 포숙아의 너무도 무관심한 태도가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간부 몇 사람이 관중을 찾아가 관중의 처사가 틀렸다는 것을 흥분해 가며 늘어놓았다. 그러나 포숙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 그 사람은 나보다 가족이 많다. 그리고 어머님이 계신다. 그만한 돈이 꼭 필요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일일이 신경을 써가며 보살피기 보다는 그가 필요한 대로 알아서 쓰는 것이 얼마나 서로 편리한 일인가. 그 사람이 만일 돈에 욕심이 있어서 그런다면 내가 트집을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게끔 얼마든지 돈을 가로챌 수 있을 것이다.'

 포숙아의 관중에 대한 이해와 아량도 놀라운 일이지만, 포숙아의 그 같은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며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없이 제 돈 쓰듯 하는 관중의 태도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뒤 관중은 독립해서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 보았으나 빈번히 실패를 거듭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관중의 무능함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포숙아는 관중을 이렇게 변명해 주었다.

 

  ' 그것은 관중이 지혜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아직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 후 관중은 포숙아와 함께 벼슬길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관중은 빈번히 군주에게 내쫓겼다. 그러나 포숙아는 관중을 모자란 사람이라고 비웃지 않았다.

 

 ' 관중이 무능해서 그런 사고를 저지르는 것이 아닐세. 아직도 때를 만나지 못한 때문이야'

그 후 관중은 세 번이나 전쟁터에 나가곤 했는데 세 번 다 도망쳐 나왔다. 사람들은 겁쟁이라고 손가락질 했으나, 포숙아는  또 이렇게 그를 변명해 주었다.

 

  " 관중은  겁이 많아서 도망친 게 아니라 늙은 어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일세."

 

"좌전. 장공 8년"조와 <장공 9년> 조에 실린 이야기를 보면,

제양공 연간에 관중은 공자 규(糾)의 스승으로 있었고 포숙아는 공자 소백(小白)의 스승으로 있었는데, 규와 소백음 모두 제양공의 아우였다. 그런데 당시 제양공이 포악무도했기 때문에 포숙아는 공자 소백과 더불어 거국(筥國)으로 도망치고 관중은 규와 함께 노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제나라에서 변이 일어나 제양공이 피살되자 공자 규와 소백은 서로 자신이 임금이 되기 위해 앞을 다투어 귀국하려 하였다.  이때 관중은 급히 규를 제나라로 호송하는 한편 군사들을 보내어 소백과 포숙아의 행차를 막으면서 당당 거국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그러다가 상대방에서 듣지 않자 관중은 활을 들어 공자 소백을 쏴 죽이고 돌아왔다.  그러나 소백은 죽지 않고 포숙아와 함께 지름길로 내달려 규보다 먼저 귀국하여 임금이 되니, 그가 제환공(齊桓公)이다.

제환공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 군사들을 풀어 공자 규와 관중 일당을 소탕해 버렸다.  이에 노나라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대군을 일으켜 제나라 군사를 공격했다. 그러나 결국 노나라 군사들이 크게 패하여 화의를 청했으나 제나라에서는 이때다 생각하고 사자를 파견해 공자 규를 잡아 죽이라고 했다. 노나라에서는 할 수 없이 규를 죽이고 관중마저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제나라 사신은 ' 관중은 우리 임금을 사살하려던 사람으로서 우리 임금께서 직접 처치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관중은 죄수를 옮기는 수레에 실려 제나라로 압송되었는데, 그때 관중은 포숙아가 자기를 살려 주기 위한 계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중이 제나라에 이르고 보니 포숙아가 직접 나와서 맞이하는 것이 실로 예상해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포숙아는 관중을 살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제환공에게 추천하여 국상으로 삼게 하였으며, 자신은 거리낌 없이 관중의 조수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제환공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을 국상으로 삼았고, 관중은 또 자기가 죽이려던 사람을 보좌하여 춘추시대 다섯 패왕(春秋五覇)의 한 사람으로 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관중은 나중에 친구 포숙아를 생각하면서 ' 나를 낳아준 이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오직 포숙아였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고 술회하였다.

이 관포의 우정을 어찌 한낱 우정으로만 말할 수 있겠는가. 개인의 영달보다는 국가와 천하를 더 소중히 아는 대인군자가 아니고서는 한갓 우정만으로 이 같은 사귐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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